버티는 삶에 관하여

[허지웅이란 사람이 궁금한 당신에게] 버티는 삶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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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옷을 다 벗고 있습니다.
이 남자는 말합니다.

“나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옷을 다 벗고 창피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니.

이 남자는 ‘솔직하게’라는 말을
자주 쓰지 않습니다.
다 벗고 말하는 사람의 사전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대학 시절,
그는 월에 15만 원 하는 고시원을 찾아갑니다.
그에겐 몸을 눕힐 작은 방 한 칸,
그리고 등록금과 생활비가 필요합니다.

오전에 편의점, 오후에 카페 서빙,
주말에 텔레마케팅을 하며,
아침에 졸린 눈을 피 흘리듯
억지로 치켜뜨며 겨우 버텨나가지만,

산다는 것은, 너무 비쌉니다.
밤에도 돈을 벌기로 합니다.

“진짜 잘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고시원 야간 총무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의연하게 포부를 밝힙니다.

그가 겪었던 야(?)하고 난감한 일들.

그래도 고시원은 학교입니다.
고시원에서 스승들을 만납니다.

빚 때문에 쫓겨 다니는 가장.
가출한 학생.
살 곳 없는 노인.
그들에게서 삶을 배웁니다.

아버지는 가족을 방치합니다.

엄마는 그를 키우기 위해
친가에서 뺨을 맞고
리어카를 끌기도 합니다.

엄마 무릎에 엎드려 울고 싶지만

엄마에게 4만9천 원짜리
머플러를 선물하고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영화를 같이 봅니다.

그는 엄마를 ‘현주씨’라고 부릅니다.
혼자 있을 때는 마음이 먹먹하지만
만나면 애인처럼 데이트 합니다.

이렇게 남김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이 봤던 세상도 남김없이
그 옷을 벗깁니다.

2008년 촛불집회, 용산 참사,
‘88만 원 세대’,
한진중공업 크레인 위의 김진숙 등

그리고 옥소리, 최민수, 유해진, 김혜수를 소환합니다.
이들을 언론과 미디어에서
어떻게 다루었는지
속사정을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말한 것은
그의 교과서인 ‘영화’입니다.

<록키>, <다이하드 4.0>, <더 헌트>, <지슬> 등
영화판 글쟁이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냅니다.

그의 스크린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요즘 우리는 이 벗은 남자를 TV에서 봅니다.

그는 자신이 쓴 신문 연재 글을
블로그에 링크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위험한 이야기 좀 쓰지 마세요.
허지웅씨 때문에
<마녀사냥> 없어지면 책임지실 건가요?”

그의 솔직함은 누구에게는
위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허지웅은 왜 옷을 벗고
우리에게 공개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들을 할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힘든 삶과 세상을
‘버티는 방법’에 대해 말을 하려고
그는 옷을 벗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의 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나만큼 고생해봤어?’가 아니라
‘나도 그래’라고 말하는
이 남자의 책은 낯설지만 가깝습니다.

허지웅이 쓴 <버티는 삶에 관하여>입니다.

그는 스스로 말하듯
책 한 켠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넌덜머리가 나고 억울해서
다 집어치우고 싶을 때마다
그 문장을 소리내 입 밖으로 발음해보며
끝까지 버팁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
남 보기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저는 끝까지 버티며
계속해서 지겹도록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모두, 부디 끝까지 버티어내시길.”

허지웅의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