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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말이 안 들리니?”
“도대체 한번 말하면 들어먹질 않아!”

‘저 머릿속에 뭐가 들었을까…’

아들을 둔 엄마라면
‘내가 낳았는데 내 자식 같지 않은,
이해 불가 아들’을 보며 생각해봤을 겁니다.

일부러 엄마를 괴롭히려는 저의가 있는 건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습니다.

“엄마한테는 딸이 있어야지.”
“아들은 키워봤자 다 소용없어.”

아들로 인해 답답한 와중에
타인에게 이런 말까지 들으면
엄마 의욕은 곤두박질, 바닥을 치거나
전생에 무슨 죄…를 운운하며 우울해지기도 하지요.

엄마와는 다른, 우리의 아들.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엄마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아이가 자라서 남자가 되는 게 아니라
아이 자체가 그냥 어린 남자다.’

책을 읽다 이 한 줄이 유독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아무래도 아들을 키우는 우리네 엄마들의
생각과 교육방향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들이 크면 클수록
“쟤 왜 저러지?”라는 물음표만 계속되고
“난 모르겠다!”는 포기의 느낌표가 반복된다면,

물음표와 느낌표가 반복될수록
아들 맘으로서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관점 바꾸기를 통한 대화법부터
남자아이를 길들이는 짧고 굵은 한마디까지
생활 속에서 유용한 대처방법이 가득합니다.

또, ‘내 아들답게’가 아닌 ‘남자아이답게’
키울 수 있는 지혜와 노하우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책 한 권 읽는다고 뭐가 달라지느냐고요?
아, 이 책을 추천하는 저는 아들이 있느냐고요?
네. 물론, 저도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하나도 둘도 아닌~ 하나도 둘도 아닌~ 셋씩이나!
어떠세요, 제 책 추천에 신뢰감이 팍! 드시지요?^^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입니다.

읽어보기 > http://goo.gl/RV947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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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몹시 보고 싶을 때

여러분은 증명사진처럼 정면에서

포착한 그/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나요.

아니지요.

정지된 사진처럼 고정된 그/그녀를

떠올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그녀의

옆모습도,

다리도,

엉덩이도

떠올립니다.

그/그녀의 손길이 스쳤던

촉감도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그녀가

생동감 있게 그려집니다.

이것이 대상을 바라보는

진실한 시선입니다.

(…)

피카소의 형상을 보면

그동안 우리는 우리가 지각하는 시선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그래야 하는 시선으로

사물을 봐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이처럼 여러 개의 시점(視點)으로

대상을 지각하는 것은 대상의 본모습을

더욱 성숙한 관점에서 이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종우의 <예술 수업 : 천재들의 빛나는 사유와 감각을 만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 중에서

.

.

.

신데렐라는 착한 캐릭터,

계모 언니는 나쁜 캐릭터…

신데렐라가

백마탄 왕자를 차고

흑마탄 기사랑 바람이나면?

동화는 가루가 되어버리겠지요.

이렇게 절대로 움직일 수 없는 캐릭터를

평면적 캐릭터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한 사람에게는 여러 모습이 있습니다.

그 모습 하나 하나 모아서 엮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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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위에서 본 왼쪽 눈,

오른쪽에서 본 코,

15도 각도에서 올려본 턱을

하나의 얼굴로 붙여 그립니다.

이런 것을 입체적 캐릭터라고 합니다.

피카소가 입체파인 이유이지요.

인간이 워낙 많은 모습을 가지고 있어

그것들을 합쳐 놓으면

딱 ‘괴물’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낯선 모습을

자기 안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다 억누릅니다.

그리고 바깥에 내놓을 때는

원하는 것만 보여줍니다.

스스로 ‘사진’이 됩니다.

사실은 우리 모습은

괴물도 사진도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일 뿐입니다.

낯선 사람이라고 다 나쁠까요?

친구도, 애인도, 가족도 한 때는

다 낯선 사람이었습니다.

내 안에 불청객이 나타나거든

이렇게 말씀해 주세요.

‘요런 녀석도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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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이
각 나라 사람들의 상대적 행복도를 측정한 결과
놀랍게도 미국인들은
긍정성을 자랑스레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한창 활황일 때조차 행복한 축에 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의
행복도에 관한 100건 이상의 자료를
종합 분석한 자료에서
미국인의 행복지수는 23위에 머물러
네덜란드인과 덴마크인, 말레이시아인, 바하마인, 오스트리아인은 물론
음울한 사람들로 알려진 핀란드인보다 순위가 낮았다.

한편 세계 우울증 치료제의
3분의 2가 미국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도
미국인들이 느끼는 고통을 시사해 준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 :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 중에서

.
.
.

얼마전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프면 환자야, 무슨 청춘은…’

긍정하고 이해하더라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까칠한 답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바버라는 암에 걸립니다.
치료를 받으러갔다가 사람들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지를 지켜보며
그 긍정이 꼭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누군가는 우리 한 명 한 명이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aus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실패했을 경우
우리 한 명 한 명이 부정적이고
게으르게 살아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결국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한 명의 개인에게 묶어놓습니다.

현실은 성공율보다 실패율이 훨씬 더 높습니다.
그렇다면 실패한 개인들은 모두 자책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미국인의 우울증 원인 중에 하나입니다.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은
우리를 부정적인 영역에 묶어놓습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을 분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긍정적이어도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인 영역이 있다고 말합니다

‘남의 탓’할 시간에 열심히 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남의 탓’하면서 열심히 살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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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물리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정신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 곳과 다른 곳을 함께 보려는 자,
과거 혹은 미래를 통과하여
이 시대에 이르려는 자가 진짜 여행자다.

-오후 세시, 그곳으로부터 중에서-

[이책은] ‘서울’이란 도시에 머물며 살아온 저자가
끊임없이 다른 장소, 다른 시간을 탐구하며 쓴 글이다.
서울의 풍경과 오래된 집이 품은 예술가들의 이름을 불러보며
이 멋진 서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자] 집필가 최예선. 길 위에서 쓰는 글과 아름다운 글의 힘을 믿는다.
무엇보다 아름다움을 믿는다. 그래서, 아름다움에 대한 글을 쓴다.
도처에 존재하는 아름다움 혹은 잊어버리거나 감추어진 아름다움에 대해서.

당신이 간직하고 싶은 오후 3시가 있다면? 오후 세시, 그곳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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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자신감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된다.

상대가 당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자
당신에게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떠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그녀)를 유혹하는 동안에는
당신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그녀)에게 감출 수 있고,

또 그(그녀)도 경험이 부족해서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몇 주일,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난 후
그(그녀)는 결국 그 사실을 깨닫고
당신에게 싫증을 내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그녀)가 떠난 지금,
당신도 알고 있었지만
잊거나 상대화하는 데 성공했던
당신의 모든 신체적, 정신적, 지적, 사회적 열등함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약점으로 당신에게 다가온다.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 씨의 사랑 여행>

.
.
.

내 안에는 그(그녀)가 사랑할 이유와
헤어져야 할 이유가 같이 있습니다.

두 개를 같이 인정하고 사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떠나게 됩니다.

그(그녀)가 떠나게 되면
그(그녀)가 약점이라고 생각한 것이
내 생각과 무관하게 내 약점이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전에는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까지 말입니다.

그렇게 그 약점은 내가 가진 강점까지 염색합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열등감을 자극하고
나는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실패자가 됩니다.

실패자들은 그(그녀)를 원망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자책감을 갖습니다.

결국 죄책감까지 들게 되고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내가 죄인이야’

버려진 사람은 심리적인 죄인이 되어버립니다.

찬 사람이 피해자가 되고
차인 사람이 가해자과 되는 역설.

더 큰 문제는 심리적 전과자가 되어버린
내가 다음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졌지만
마음으로는 절대 지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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