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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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내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인지를 어떻게 아느냐고?
이 질문은 ‘자신의 직관을 믿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그걸 알려면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지.
좀 서툴더라도 어떻게든 들어보려고 노력해야 해.

정답은 거기에 있어.
자신의 직관 말이야.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책을 뒤져가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의 목록을 만들어
제대로 실천했는지를 따지겠지.

하지만 결국 이 직관적인 느낌이 없다면 더 나아갈 수 없어.

사랑에 빠진다는 것.

그 의미를 머리로 이해하려고만 들어서는 안 돼.

나는 그걸 직관에서 비롯되는
깊은 내면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어.

일종의 천부적인 능력이지.

사랑에 빠진다는 건,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이것이 옳으니
이렇게 하라는 직관의 인도를 받는 걸 말해.

확실히는 몰라도 일단 보면 감이 오는 거지.
칼 필레머의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
삶, 사랑 그리고 사람에 대한 30가지 지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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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판단하고 결정할 때
하나 하나 이유를 따집니다.

하지만 사랑을 할 때는
무언가가 끌어당기는 것처럼 빠져듭니다.

쇼핑 한 번으로 미래가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아예 한 사람의 미래를 묶어놓기도 합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아무도 사랑에 빠지지 못할 것입니다.

뭔가 따져보기 시작할 때
사랑은 불가능해집니다.

일단 ‘화~악!’해놓고 후회하는 것이 사랑아닐까요?

후회는 모두가 합니다.
후회없는 사랑은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신의 사랑일 것입니다.

사랑에 빠질 때 이것 저것 따져서 사랑을 하더라도 후회를 합니다.

연애를 해봤더니 연애 전보다 훨씬 더 좋고
점점 괜찮아진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좋아지든 후회하든 이것은 사랑 후에
드디어 따지기 시작하면서
논리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하는 평가입니다.

직관적으로 좋다 싫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습니다.

연애를 하는 과정에
직관적으로 좋다 싫다를 생각하는 순간은
이별의 순간일 것입니다.

사랑이 그렇듯
이별도 직관적일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직관’을 논리로 만드는 것이 결혼이라는 ‘제도’입니다.
사회적인 비판과 법적인 규제를 통해 관계를 만듭니다.

그래서 사랑은 직관이지만 결혼은 논리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이 둘은 다른 결을 가지게 됩니다.

결혼한 사람들한테 사랑을 들이대거나
혹은 사랑으로 평가하는 것은 의미없거나 쓸모없는 일입니다.

사랑은 그냥 너무 좋은 ‘상태’ 즉 ‘결론’이지만
결혼은 논리적으로 따져봐야 하는 ‘결정’입니다.

그 때문에 사랑의 후회와 결혼의 후회는
완전히 다른 질적인 차이를 갖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부분을 혼용해서 생각하다보니
생기지 말아야 할 문제도 생기곤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그냥’해도 결혼은 ‘따져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결혼은 같은 선상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결혼을 원하지만 (배타적인 소유를 위해서)
결혼은 사랑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소유관계는 사랑을 앞섭니다)

부부가 되신 분들은
사랑하는 중이 아니라
아마 ‘결혼한 중’일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