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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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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부자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오백 명의 가난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있으면,
전쟁을 부자가 되는 기회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아이러니하고 씁쓸한 현실을 꼬집고,
가려운 부분은 긁어주는
유쾌한 소설이 있습니다.

피에르 르메트르의 장편소설,
<오르부아르>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던 회계사, 알베르.
아버지와 의견 차이로 힘들어하던
부잣집 도련님, 에두아르.

평범한 두 사람의 인생은
전쟁에 참전하면서,
완전히 꼬이기 시작합니다.

생매장 위기에서
잘린 말의 머리에 남겨진 공기로
겨우겨우 살아남은 알베르,
그를 구하려던 에두아르는 포탄 파편에 맞아
얼굴 반쪽을 잃었습니다.

불구가 되어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그들에게 닥친 현실은
전쟁 영웅이 아니라,
또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쟁이었는데요.

자신을 희생한 군인은 갈 곳이 없고,
자본가들은 전쟁을 이용해
자본을 쌓아가는 이 위선적인 상황에서
세상에 복수를 꿈꾸며

두 젊은이는
전대미문의 대국민 사기 사건을 계획하는데…
이들의 계획은 성공했을까요?

전후의 부조리한 사회를
기가 막히게 풍자했습니다.

전 유럽 문학상을 휩쓴 작가 르메트르는
<오르부아르>로 문학성과 예술성을 중심으로
수상작을 선발하는 프랑스 최고문학상,
공쿠르상까지 거머쥐었는데요,

심사위원은
“이 시대에 출간된 가장 강력한 소설”이라고 평했습니다.

“중요한 결정은 50년은 고민해봐야죠…”라며,
55세에 소설가가 된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내공이 돋보입니다.

흥미진진하면서도,
프랑스 문학 특유의 심오한 철학과 유머까지,
프랑스에서 백만 부가 판매되었습니다.

책 <오르부아르>를 읽다 보면,
소설 속 이야기가 프랑스의 이야기인 것만은,
전후 사회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의 답답한 구조, 무엇이 문제인지
시원하게 긁어주었으면 하는 사람이라면?

흥미진진 전쟁의 서스펜스와
그 안에 사랑까지 느끼고 싶다면?

그러면서도 어렵지 않고,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소설을 찾고 있다면?

유쾌한 두 젊은이의 반란
피에르 르메트르의 장편소설,
<오르부아르> 입니다.

참, 오르부아르는
“잘 가요, 안녕”이라는 뜻입니다.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 유쾌한 이야기에 빠지고 싶다면,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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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를 바라본다.
눈을 감아도 그녀가 보인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그는 어린 소녀의 향기를 들이마신다.

두 눈을 감고 그녀의 숨,
그녀가 내쉬는 따뜻한 숨결을 들어마신다.

그녀의 육체는 점점 경계가 희미해지고,
그는 이제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이 육체는,
다른 몸들과 달리,
무한하다.

침실 안에서
그녀의 육체는 점점 확대된다.
정해진 형태도 없다.

육체는 매 순간 생성되어,
그가 보고 있는 곳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존재한다.

시야 너머로 퍼져 나가
유희와 죽음을 향해 확장된다.

이 육체는 유연하여,
마치 성숙한 여자의 육체처럼
완전한 쾌락에 빠진다.

그녀의 육체에는 속임수가 없다.
놀라움 감각을 가진 육체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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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화 등에서 에로스에 대한 스토리는
꼭 죽음이라는 것과 같이 합니다.

욕망은 곧 죽음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욕망을 억누르는 연습을 합니다.

하지만 욕망의 어법은
죽음의 어법과는 다른 질을 갖습니다.

욕망하든 욕망하지 않든 죽음은 찾아오고
죽지 않고 살아남는 욕망도 언제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도덕과 윤리는
욕망의 끝에 죽음이라는 테두리를 친 다음에야
그 의미를 갖습니다.

그 테두리를 ‘허용’이라고 부릅니다.

항상 궁금한 거지만,
그걸 허락하는 건 누구이며
왜 허용한걸까요?

그리고 사랑은
이 에로스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소설 ‘연인’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소녀는
욕망을 벼려낸 결정체입니다.

육체라고 표현되지만
마음 속에서는 무한히 확장되는 ‘욕망’입니다.

수 많은 문학작품에서
이것을 파멸이라고 부릅니다.

파멸은 곧 죽음을 말합니다.

욕망과 파멸은
육체와 죽음과 맞대응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유한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유한성이 바로 ‘허용’이지요.

이 ‘경계선’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이것을 친 사람을 찾는 것.
그것의 실체를 알아가는 것.
왜 그런 경계선이 생겼는 지 생각하는 것.

우리가 끊이지 않고 하는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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