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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러브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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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살의 봄,
스미레는 난생처음 사랑에 빠졌다.

광활한 평원을 가로지르며
돌진하는 회오리바람처럼
격렬한 사랑이었다.

그것은 지나가는 땅 위의 형태가 있는
모든 사물들을 남김없이 짓밟고,

모조리 하늘로 휘감아올리며
아무 목적도 없이 산산조각 내고
철저하게 두들겨 부수었다.

그리고 고삐를 추호도 늦추지 않고
바다를 가로질러
앙코르와트를 무자비하게 무너뜨리고,

가련한 한 무리의 호랑이들과 함께
인도의 숲을 뜨거운 열로 태워버렸으며,

페르시아 사막의 모래폭풍이 되어
어느 곳엔가 있는 이국적인 성곽 도시를
모래 속에 통째로 묻어버렸다.

그것은 멋지고 기념비적인 사랑이었다.

사랑에 빠진 상대는 스미레보다
열일곱 살 연상으로, 결혼한 사람이었다.

거기에 덧붙인다면 여성이었다.

그것이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이자
(거의) 모든 것이 끝난 장소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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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은 싫습니다.

소설이 끝나고 나면
다시 파멸이 시작될 것 같거든요.

‘오래 오래 행복했답니다’는
고전 동화의 말이지요.

이렇게 만들어진
동화의 꿈이 깨져가는
시간을 ‘성장한다’고 합니다.

잔인한 결말이 예상되는 사랑은
그래서 청춘에게만 허용됩니다.

다른 삶을 살아볼 기회가 주어지기때문이죠.

그렇지만
파격과 파괴가 없는 사랑은

냉동고에서 꺼낸 찐빵을 바로 먹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북극에서 뜨거운 찐빵을 먹어야 할텐데요.

열정적인 사랑을 끝내고나면
두려움에 누구 앞에서도
사랑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 상처와 두려움은
장벽이 되어버립니다.

그 건너편에 봄날이 있을지
전쟁터가 있을지 모르기때문에
넘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그 벽을 넘고 싶습니다.

단 하나의 내가 남지 않더라도요.
p.s. 하루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사랑 소설은 별로 쓰고 싶어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보면
사랑에 대해 가장 잘아는 소설가인 것 같습니다.

월트 디즈니가 10대의 사랑을 만들었다면
20대의 사랑은 하루키가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 존경하지만
하루키에게 사랑을 배운 여자랑
연애하기는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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