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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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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 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凍死者)가 얼어 죽을 때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 / 슬픔이 기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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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저에게 남았던 단어는 ‘연민’이었습니다.

누가 책임져야 하며,
누가 잘못했는지는
최소한 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아플 때
아파하지도 못하고
자기의 영역안에서만
상처받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 학습된 ‘감정의 폭’을 넓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것 다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고
구토가 나오는 것을 한참 참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 참배를 하러 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으로 죄책감을 때우기에는
제가 너무 한심했기때문입니다.

사실 그 이유때문에 글을 써서
사람들과 같이해보자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북티셰의 탄생 설화입니다.

이 상식적인 연민이
몰상식의 망각안에 갇혀…

그렇게 고여버린 세상에서,

우리가 할 것은
‘슬픔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슬퍼하는 마음,
이것으로 충분히 세상은 바뀌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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