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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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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어.
9.11 사건이 일어난 거야.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가족을 읽는 아픔을 겪었지.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테러를 일으킨
나라를 공격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안된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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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반대한 사람들은
9.11 사건으로 아픔을 겪은
가족들이 모여 만든
‘피스플 투모로우즈’라는
평화운동 시민 단체 사람들과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었어.

이 사람들은 전쟁을 반대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무게가 1톤이나 되는 돌을
나무 수레에 싣고, ‘스톤 워크’라는
이름으로 함께 걷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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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돌이 바로 나야.
내가 태어난 순간이지.

전쟁은 아주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구 곳곳에서 많이 일어났어.
한국도 1950년에 일어난
6.25 한국전쟁으로 전갱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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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레와 함께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
창녕을 거쳐 합천에 도착했어.
일제 강점기 때, 원자폭탄으로
죽거나 방사능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 합천이거든.

우리는 합천을 떠나
거창, 하동, 남원까지 걸었어.
걷는 동안 6.25 한국전쟁의 아픔과
전쟁 때 희생당한 분들을 추모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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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고, 수요 집회에도 나갔어.
그리고 다시 파주와 강화도를 지나
임진각으로 향했어.

나는 기나긴 일정을 마치고
수레와 함께
‘합천 원폭피해자복지회관’
작은 뜰에 놓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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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걸었던 평화 운동가
돗 월슈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어.

“무거운 돌을 한 사람이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평화 운동도 같습니다.
여러 민족, 여러 나라 시민이
함께 손을 잡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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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톤 워크(Stone Walk).
저도 책을 통해 알았습니다.

2007년 4월 29일 부산을 출발해
6월 25일 임진각까지
많은 시민과 평화 활동가들이
1톤이나 되는 무거운 돌(추모비석)을
끌며 우리 나라의 전쟁의 아픔을 지닌
많은 지역을 걸었다고 합니다.

마치 공기와 같아서
평소에는 그 소중함을 모르다가
전쟁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닥쳐왔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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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서대문형무소를 찾았습니다.

높은 담벼락부터
유관순 열사가 갇혀있던 여옥사,
무시무시한 지하 고문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사진…

모든 게 무섭고, 무겁고,
춥고, 어둡게 느껴지더군요.

경험해보지 못한 전쟁.
그리고,
그 소중함을 몰랐던 평화.

그림책 한 권을 통해
다시금 새겨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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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릉!
한밤중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루이즈, 르완다가 위험해. 알고 있어?
대통령이 암살됐대. 전쟁이 시작되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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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

집에서 나와 큰길을 걷는데,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루이즈는 막내 루시를 업고 사무엘과 이라코제의
손을 잡은 채 할머니, 언니와 함께
사람들의 행렬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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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바롱고 다리;

버스가 멈춰섰습니다.
다리를 건너야하는데, 다리 위에는
총칼을 든 군인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루이즈 일행은 있는 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숨이 차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뒤돌아보니,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군인들에게 끌려가 강변에 늘어서 있었습니다.
곧이어 총소리가 나고, 사람들이 강으로 떨어졌습니다.
루이즈는 눈을 감고 총에 맞아 강물에
떠내려간 사람들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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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

“엄마, 배고파. 뭐든 먹고 싶어.”
“엄마, 목이 말라요. 물 마시고 싶어요.”
아이들 앞으로 한 청년이 빵을 들고 지나갔습니다.
“저에게 파세요. 얼마예요?”
“2000프랑을 주지 않으면 안 팔 겁니다.”
얼마 전까지 60프랑이던 빵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루이즈는 아이들을 위해 빵을 샀습니다.
봉지를 열어보니 빵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루이즈는 곰팡이를 손으로 떼어 내고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먹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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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촌 생활;

루이즈 가족은 ‘고마 난민촌’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난민촌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마실 것도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식량이 부족한 난민촌에서
가장 먼저 죽어 가는사람은 엄마들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고
자신은 굶었던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난민촌에는
고아가 된 아이들이 넘쳐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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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루이즈는 열심히 통역일을 했습니다.
난민촌 생활 반년 후, 난민촌은 강제 해산되고,
사람들은 르완다로 돌아가거나 숲속으로 흩어졌습니다.
루이즈는 유학생으로 가족과 함께
일본에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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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뉴스를 통해
한 아이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시리아에서 한 아이가
카메라를 총으로 오해해
두 손을 번쩍 든 사진 한 장.
큰 눈망울에 가득한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장난감 총을 연신 쏴대며
싸움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뉴스에서 본 지구 반대편 그 아이가떠오릅니다.

전쟁. 내전. 총. 학살. 난민…
우리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요.
그냥 ‘아프리카 아이들’이라고 하며
‘불쌍한 아이들, 밥 못먹는 아이들,
맨발로 다니는 친구, 도와줘야하는 대상’
정도로만 알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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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공존의 중요성,
우리 아이 세대에서 더 중요해질테지요.
생각만 해도너무나 슬프고 두려운 단어, ‘전쟁’.

‘만약에, 전쟁이 일어난다면…’하고
가끔 상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막막하고 먹먹하기만 하지요.
이유는 바로 아이들 때문입니다.
내가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평화’.
엄마가 되고나서 가장 중요해진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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