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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141128_그래도 사랑

 

칼릴 지브란은 신전의 두 기둥처럼 사랑하라고 말했습니다.
신전의 두 기둥은 나란히 서 있죠.
그 사이로는 자유로운 바람이 오고 가고요.
기둥이 가까워지다 못해
하나로 포개진다면 신전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가로수가 우거진 길을 걷는 걸 좋아합니다.
길가의 나무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어요.
지나치게 가깝게 붙어 있으면 가지가 부딪치고 꺾일 거예요.
뿌리를 뻗어나갈 자리가 부족해 잎이 마르겠죠.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합니다.
기둥도,
나무도,
사랑도,
관계 또한

그렇다는 걸 우리는 알아요.

정현주의 <그래도 사랑 언젠가 너로 인해 울게 될 것을 알지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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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두 사람 사이엔 바람 하나 지나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죠…
사랑할 때는 바람에도 질투가 나거든요.

여러분은 어떤 사랑중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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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를 바라본다.
눈을 감아도 그녀가 보인다.
그는 그녀의 얼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그는 어린 소녀의 향기를 들이마신다.

두 눈을 감고 그녀의 숨,
그녀가 내쉬는 따뜻한 숨결을 들어마신다.

그녀의 육체는 점점 경계가 희미해지고,
그는 이제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이 육체는,
다른 몸들과 달리,
무한하다.

침실 안에서
그녀의 육체는 점점 확대된다.
정해진 형태도 없다.

육체는 매 순간 생성되어,
그가 보고 있는 곳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존재한다.

시야 너머로 퍼져 나가
유희와 죽음을 향해 확장된다.

이 육체는 유연하여,
마치 성숙한 여자의 육체처럼
완전한 쾌락에 빠진다.

그녀의 육체에는 속임수가 없다.
놀라움 감각을 가진 육체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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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화 등에서 에로스에 대한 스토리는
꼭 죽음이라는 것과 같이 합니다.

욕망은 곧 죽음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욕망을 억누르는 연습을 합니다.

하지만 욕망의 어법은
죽음의 어법과는 다른 질을 갖습니다.

욕망하든 욕망하지 않든 죽음은 찾아오고
죽지 않고 살아남는 욕망도 언제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도덕과 윤리는
욕망의 끝에 죽음이라는 테두리를 친 다음에야
그 의미를 갖습니다.

그 테두리를 ‘허용’이라고 부릅니다.

항상 궁금한 거지만,
그걸 허락하는 건 누구이며
왜 허용한걸까요?

그리고 사랑은
이 에로스에 대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소설 ‘연인’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소녀는
욕망을 벼려낸 결정체입니다.

육체라고 표현되지만
마음 속에서는 무한히 확장되는 ‘욕망’입니다.

수 많은 문학작품에서
이것을 파멸이라고 부릅니다.

파멸은 곧 죽음을 말합니다.

욕망과 파멸은
육체와 죽음과 맞대응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유한성이라고 부릅니다.

이 유한성이 바로 ‘허용’이지요.

이 ‘경계선’을 찾아내는 것.
그리고 이것을 친 사람을 찾는 것.
그것의 실체를 알아가는 것.
왜 그런 경계선이 생겼는 지 생각하는 것.

우리가 끊이지 않고 하는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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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뒷걸음질도 치고
제자리걸음도 했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저지르고 후회해도 결국엔 다 괜찮은 일들 중에서

[이책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라는 말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결국에는 다 ‘괜찮다’ 는 사실, 그리고 ‘추억할 힘이 생긴다’ 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저자] 이소연 KBS 드라마 PD는 전작인 『후회할 줄 알면서 저지르는 일들』,
『지금 저지르지 않으면 후회할 일들』에 이어
이 책 『저지르고 후회해도 결국엔 다 괜찮은 일들』에서 한층 더 성숙하고
공감되는 인생의 장면들과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전에 내가 지나왔고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인생의 장면들에 대하여,

-저지르고 후회해도 결국엔 다 괜찮은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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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자신감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된다.

상대가 당신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자
당신에게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떠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그녀)를 유혹하는 동안에는
당신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그녀)에게 감출 수 있고,

또 그(그녀)도 경험이 부족해서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몇 주일,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난 후
그(그녀)는 결국 그 사실을 깨닫고
당신에게 싫증을 내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그녀)가 떠난 지금,
당신도 알고 있었지만
잊거나 상대화하는 데 성공했던
당신의 모든 신체적, 정신적, 지적, 사회적 열등함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약점으로 당신에게 다가온다.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 씨의 사랑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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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그(그녀)가 사랑할 이유와
헤어져야 할 이유가 같이 있습니다.

두 개를 같이 인정하고 사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떠나게 됩니다.

그(그녀)가 떠나게 되면
그(그녀)가 약점이라고 생각한 것이
내 생각과 무관하게 내 약점이 되어버립니다.
심지어 전에는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까지 말입니다.

그렇게 그 약점은 내가 가진 강점까지 염색합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열등감을 자극하고
나는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실패자가 됩니다.

실패자들은 그(그녀)를 원망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자책감을 갖습니다.

결국 죄책감까지 들게 되고
이상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내가 죄인이야’

버려진 사람은 심리적인 죄인이 되어버립니다.

찬 사람이 피해자가 되고
차인 사람이 가해자과 되는 역설.

더 큰 문제는 심리적 전과자가 되어버린
내가 다음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졌지만
마음으로는 절대 지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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