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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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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집.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집.
지금은 공사장 소리만 가득한
기억 속의 집.

오늘 아침에도 그곳을 지나쳤다.
일부러 시선을 멀리 던졌다.
몇 년 전 이주단지로 지정된 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를 볼 수 없는
그곳의 삭막한 풍경이 가슴을 아프게 해서.

일 년 전,
마지막 짐 정리를 하러 가족들과
할머니 댁을 찾았다.
손때 묻은 살림살이들은 새집으로 옮겨졌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우리 할머니는
새집보다는 이 집이 좋다며
텅 빈 방, 차가운 바닥에서 주무시곤 했다.

할머니에게도, 나에게도
그 집은 그냥 집이 아니었다.
할머니에겐 할머니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담긴 집이었고
나에게는 유년시절의 추억이
이곳저곳에 숨어있는 소중한 집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가꿨던 텃밭,
새벽녘 소 젖을 짜러 나가는 할머니와
떨어지기 싫어 쪼그려 앉아있던 마당 한쪽,
할머니의 웃는 얼굴을 보려고
큰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마다 무대로 삼았던
마당 한가운데의 큰 돌덩이.
내 노랫소리가 시끄럽다며
더 크게 꽥꽥 소리 지르던 마당 뒤편의 거위.
내 장난감이었던 염소 열댓 마리와 닭들.

할머니와 나와의
소중하고 또, 소중한 순간들이
숨은그림찾기처럼 숨어있던 할머니 집.

그런 추억의 집이
‘신도시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너무 쉽게 허물어졌다. 사라졌다.

사람들은 말한다.
보상받아 좋겠다고,
좋은 집으로 이사가서 좋겠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다.
돈으로 바꿀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한순간 고향을 잃은 상실감이 어떤지를.

퇴근길,
할머니 댁을 오가던 마을버스가 지나간다.
어릴 적 시장에 가기 위해
할머니와 손잡고 하염없이 기다리던
바로, 그 노란색 버스다.

버스 정류장 표시를 보니
할머니 동네 이름이 지워지고
그 위에 다른 동네 이름이 새겨졌다.
할머니가 살던 동네도,
우리 할머니 집도 그렇게 지워지고 있다.

나라도 기억하련다.

봄이면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마당,
여치가 뛰놀던 잔디,
빨래가 바람결에 날리던 옥상,
할아버지가 매달아준 그네,
온 식구들이 모였던 평상,
멀리서 들리는 할아버지 경운기 소리.

언제까지나 기억하련다.

정겨운 우리 할머니 집,
그리고 그곳에서 받았던 사랑을.

달볕 님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를 내 사연을 보내주신 분들께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삼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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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연애 #직장 #인생 #우리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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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태어났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한 여인의 몸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은 채.

아기는 열심히 어미의 빈젖을 빨았다.
여인은 꼭꼭 밥을 씹어 아이에게 먹이며
사랑과 정성으로 아기를 품어 살려냈다.

어릴 적 홍역 침을 잘못 맞아
벙어리가 된 여인은 기구하고 불쌍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가난과 모진 병에 시달리다
어린 피붙이 하나만 세상에 덜렁 남겨두고
차마 감을 수 없는 눈을 감았다.

여인의 아기는
의젓함이 슬프게 느껴질 정도로
철이 든 소년으로 자라났다.

소년의 아버지는
가난을 비통해하며
술로 힘든 세상을 잊고 지내다
제주 4.3사건 때 영문도 모른 채
산으로 끌려가 애처로운 죽음을 맞았다.

소년의 나이 7살.
독한 외로움을 혼자 견뎌내기엔 너무 어렸다.

친척 집에 얹혀살던 소년은
작은 몸뚱이로는 버티기 힘든 밭일과
시도 때도 없는 모진 매타작에
결국, 한밤중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다.

몇 날 며칠을 산속에서 헤매다
‘하효’라는 마을에 찾아들어
마을 유지인 딸부잣집 김씨 어른네 머슴이 되었다.

머슴으로 온갖 잡일을 하던 소년은
머슴살이의 서러움을 견디고 버티며
의젓한 청년으로 자라난다.

천성이 어질고 착실했던 청년은
주인의 신뢰를 얻었고,
결국 딸부잣집 막내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느껴보지 못했던 청년은 처가 식구를
극진히 봉양하고 정성을 다해 모셨고
구두쇠에 대쪽같은 성격으로
모질게 대했던 장인어른의 노년마저도 책임을 졌다.

장인어른의 대소변도 마다치 않았던 그는
장인어른의 마지막 유언을 듣게 된다.

“고맙네. 고맙네, 사위…”

청년은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들이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행여 남들에게 서러움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아내와 가난과 고됨을 견뎌냈다.

다섯 아이는 곧고 바르게 자랐고,
그 또한 자상한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이제 그는 힘들었던 지난 시간과
서러움을 오롯이 홀로 견뎌온 세월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움을 가진 사람으로 변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그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매일 새벽마다 바다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항시 떠나지 않은
한 분을 위한 그리움과 감사함을 담은 기도,
부모님을 향한 기도였다.

못다 한 효도를 홀로 사는 노인들을
두루두루 살핌으로 대신했던 그가
이제는 칠십 중반의
인자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어릴 때 내 억울함을 들어줄
형제지간 한 명만 있었어도…”

지난날을 회상할 때 할아버지가 된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한다.
외로움과 서러움이 뼈에 사무쳤던 지난날들을
어떻게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
.
.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자란
다섯 형제는 뿌리를 내려
많은 자손을 안겨드렸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드렸다.

이제 칠십 중반의 인자한 노인이 된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중얼거림 속에서 나는 들었다.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애타게 그리워했던 어린 시절의 아픔을.

아버지는 지금도 ‘어머님의 영혼’을 느끼며
오늘을 감사하게 살아간다고 하신다.

나도 참 감사하다.
지금까지 내 곁에 계셔서,
힘든 인생길을 잘 견뎌주셔서.

“존경합니다, 아버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영희 님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를 내 사연을 보내주신 분들께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삼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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