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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한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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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 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사연입니다.

엄마의 ‘봄’은 바빴다.
농사일로 바쁜 것은 물론이고
틈틈이 산으로 들로 다니며
고사리, 냉이, 달래로 반찬도 챙겨야 했다.

그때마다 싸리 바구니 한구석엔
내가 좋아하는 산딸기며 찔레가 꼭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의 ‘여름’ 또한 바빴다.
곡식이 자라는 속도에 맞춰
엄마의 손놀림도 그만큼 빨라져야 했고
매일 논과 밭 김매기는 기본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해질 때까지 들에서 일하셨기에
우리 가족은 컴컴한 8시를 훌쩍 넘어서야
겨우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엄마의 ‘가을’은 더 바빴다.
시기에 맞춰 익어가는 곡식들을 거두어
말리고 털어 창고에 가지런히 보관해야 했고,
종가의 맏며느리로서 사대봉사도 섬겨야 했다.

내 기억 속에
엄마와 함께 잠든 기억이나
엄마의 잠자는 모습이 남아있지 않는 건
농사, 맏며느리, 엄마로서의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조금은 한가해지는 계절은, 바로 ‘겨울’.
잎담배 감장이 끝나는 시기이다.

엄마는 날이 조금 쌀쌀해져서야
그제야 동네 분들과 화투도 치고
라면 국수도 끓여 함께 나눠드시곤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다란 무쇠솥에 가득했던 라면 국수.
너무 많이 끓인 탓에 다 퍼졌지만
엄마가 해준 그 라면 국수의 맛은
어른이 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 내내 바빴던, 힘겨웠던 우리 엄마.

지금 우리 엄마는
어느 계절에도 편히 쉬고 계신다.

엄마 얼굴에 내 얼굴을 가만히 대보았던 어느 날.
마지막으로 엄마의 얼굴을 온전히 느꼈던 그 날.
따뜻했던 어머니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 있었던 잊지 못한 그 봄날…

난 잠시 마주했던 엄마의 얼굴을 뒤로하고
밖으로 뛰쳐나와 엄마와 함께한 시간만큼 울었다.
그렇게 엄마를 보내드렸다.

엄마와 서럽게 이별을 한 그 날 이후…
그동안 여섯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내 곁에 왔다가, 갔다.

오늘은 오랜만에
푹 퍼진 라면 국수를 먹어봐야겠다.

엄마와의 계절을 생각하며.

여리 님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를 내 사연을 보내주신 분들께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삼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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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한줄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가족 #연애 #직장 #인생 #우리사는이야기

*선정되신 분들께는
– #책속의한줄 SNS 글 소개
– 도서 출간 시 우선 수록
– 도서를 선물해드립니다.

*사연 보내실 곳 : story@ladybugs.co.kr
– 사연, 사진, 필명, 연락처 필수^^
(보내주신 사연/사진은 보기 편하게 수정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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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92

써니맘 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사연입니다.

2년 전 어느 날,
칼퇴근하던 남편이
전화 한 통도 없이 술 냄새를 풍기며
아침 6시에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들어온 남편은
아내의 걱정 한가득 뒤로 한 채,
바로 욕실로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

내 두 눈에서는 레이저가 발사되었고
내 마음은 떨리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난 아내랍시고
평소와 다름없이 습관처럼 했던 그 행동…
남편이 벗어놓은 양복 윗도리를
털어 옷걸이에 걸고 말았다.

아차! 싶었을 때
남편의 옷에서 작은 종이가 떨어졌다.

은행 출금 확인서.
금액 200만 원.

아까보다 더 심장이 두근거리고
두 눈은 튀어나올 지경이 되었다.

도대체 이 큰돈을 왜 뺀 거지?
설마, 하룻밤 술값은 아니겠지?
아니, 술값이 아니라… 설마!

남편이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아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
매우 예리하면서도 매우 감정적으로
우리 남편을 맹렬히 심문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앙칼진 나의 심문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앉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말없이
쓰윽, 핸드폰을 내밀었다.

당시 남편의 직업은 자동차 지점장이었다.
처음엔 호기롭게 영업을 시작했지만
불경기에 생각보다 일은 잘 풀리지 않았고
매월 말일만 되면 얼굴은 반쪽이 되었다.

‘그 일’이 있던 그 날도
힘든 말일이 막 지난 7월의 첫날이었다.

남편의 핸드폰 속
‘받은 메시지함’을 보자마자
난 한순간에 ‘얼음!’이 되었다.

받은 메시지함 속 47개의 메시지는
동료와의 실적 비교에 대한 코멘트부터
인신공격적인 내용, 참기 힘든 욕설,
기분 나쁜 비아냥까지
삶에 대한 회의가 들 정도의
다양한 메시지로 가득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메시지 내용은 마감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그 수위와 강도가 점점 강해졌다.

어제,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후배 영업사원 한 명이
남편을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차를 뽑아
남편의 실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남편은 이런 후배 사원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에
새 차 출고 비용 200만 원을 빌려주었단다.

고맙다고 한 잔,
신세를 한탄하며 한 잔,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자 또 한 잔…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졌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따라 흘렀다.
우리는 아이가 깰까 봐
한참을 함께 흐느껴 울었다.

.
.
.

얼마 후, 우리는 큰 결심을 했다.
남편과 11살 된 딸이
뉴질랜드로 가기로 한 것이다.

남편에게 그곳에서
당분간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유시간을 가져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내 맘 변하기 전에 얼른 가.
마누라 직장 있고, 수입 있을 때!”

남편은 많이 주저했다.
그리고 미안해하며 떠났다.

그렇게…
나는 ‘기러기 엄마’가 되었다.

남편과 딸이 떠난 지 2년.
다행스럽게도 처음에 걱정하고 염려했던
많은 일이 하나씩 잘 해결되었다.

성실한 우리 남편은
뉴질랜드에 정착한 지 3개월 만에
제법 내실 있는 무역업체에 취직했다.

12살이 된 딸도
언어장벽을 잘 넘었고,
수학경시, 배드민턴 등 각종 경기에
나가며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다.

혼자 남은 나는
틈틈이 딸과 영상통화 하느라
칼퇴근하기 바쁘고
한 달에 한 번꼴로 딸 학용품을
소포로 보내며 사랑을 함께 전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발을 내딛기 힘든 내일.

우리 가족도 그랬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불안한 내일을 향해
함께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성실히 힘을 모아 걷다 보면
생각지 못한 길이 분명 나타난다는 사실을.

이제 시작이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차근차근
이민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먼 훗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마음이 어떨까.

남편과 함께
이렇게 회상하고 싶다.

“와… 그때는 정말 막막했었는데
정말 이런 날이 오긴 오네.
지금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나중에, 또 나중에도
우리 또 함께 ‘오늘’을 기억하자.”

 

써니맘 님, 가족과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를 내 사연을 보내주신 분들께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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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한줄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가족 #연애 #직장 #인생 #우리사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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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사연/사진은 보기 편하게 수정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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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62

이세아 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사연입니다.

중국에서 홀로 유학한 지 11년째.
너무나 어려서부터 유학을 했기에
엄마에 대한 정과 그리움이 뚝뚝…
흐르는 것 같다.

이제 내 나이 열여덟 살.
내 또래 친구들이
엄마한테 작은 일로 짜증 내는 걸 보면
이상하게 나는 화가 난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너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

저 애는 모르겠지. 엄마한테 짜증 내는 게
얼마나 큰 사치이고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건지.

나의 소원은
엄마의 따뜻한 밥을 먹고 학교 가는 것.
나의 꿈은
엄마 옆구리에 꼭 붙어 품 가득 엄마를 안고 잠드는 것.

내 인생의 목표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보다
‘엄마랑 함께 사는 것’

시간이 흐르고 흘러,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키와 몸은 더 커졌지만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은 그 두 배, 세 배로 커졌다.

특히, 요즘은 대학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전화로
“여보세요”하는 엄마의 목소리만 들리면
나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뚝.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네 맘 다 알아. 다 아니까 힘내.”

엄마가 나를 토닥여주는 말을 하면 할 수록
나의 숨죽은 흐느낌과 훌쩍거림은 더해지고 만다.

애써 웃으며 건네는 마지막 인사.
이제 곧 성인이 될 나이인데
엄마 앞에서 나는 언제나 아기다.

한국에 갔을 때
엄마 옆에 누워 생각했었다.
‘시간이 이대로 멈춰 버렸으면…’

날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을 엄마.
엄마를 위해 내일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보다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보고 싶어. 엄마가 보고 싶어”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엄마.

그리운 마음 한가득 담아,
이 글을 써본다.

“사랑해, 엄마.
보고 싶어, 우리 엄마!”

이세아 님, 엄마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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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책속의 한줄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가족 #연애 #직장 #인생 #우리사는이야기

*선정되신 분들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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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사연/사진은 보기 편하게 수정 될 수 있습니다.)

 

0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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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는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는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도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그가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품은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친구와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도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는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쳐 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으면 된다.

우리는 흰 눈 속 침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자기답게 사는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진 않을 것이며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진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듯이 몰두하게 되길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묵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우리는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은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 하리라.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창문을 열다가
까닭 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면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손이 작고 어리어도
서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니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 지리라.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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