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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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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해야
마음을 비워낼 수 있다.

슬픔을 쌓아두고
상처를 덮어두는 게 아니라
슬픔을 퍼내야 상처가 치유된다.

바닥이 드러난 슬픔은
더 이상 슬픔이 아니다.

아플 만큼 아파해야
제대로 이별할 수 있다.

그래야만 지나간 사랑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별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던
시간이 그래도 좋았던 기억,
사랑받았던 추억으로 남게 된다.

사랑을 부정했던 마음이 편안해져야
또 다른 사랑을 맞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늘 잡는 연습만 해왔다.

어릴 땐 더 많이 먹기 위해
양손으로 먹을 걸 꼭 잡았고,

집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엄마 손을 꽉 잡아야 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연필을 굳은살이 박이도록 잡았고,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튼튼한 줄을 잘 선별해 잡아왔다.

그 과정에서 잡았던 걸
놓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더 많이 잡기 위해 더 힘을 주었을 뿐이다.

정용실,송윤경,홍진윤,김준영이 쓴
<언젠가 사랑이 말을 걸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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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위대한 영혼이여

그 목소리를 내가 바람 속에서 들으니
그 숨결이 모든 세상에 생명을 주나니
내 말을 들으소서!

나는 작고 약하며
당신의 힘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인디언 기도문 –

히크먼의 <상실 그리고 치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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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약해서’,

이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연과 위대한 영혼과 신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입니다.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거스르지 말아야 할 질서에 대해 인식하는 것입니다.

작아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자연의 힘을 깨닫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겸손에 대해 생각하게 해줍니다.
인간의 질서가 옳지 않다는 것에 대해…

억지로 애쓰지 않겠다는 자기 고백이기도 합니다.

같이 사는 것은 나누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게 사는 것입니다.

인간과 자연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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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어떤 날은
예기치 못하게
비를 맞기도 하고

어떤 날은
너무나 아름다운 날과
만나기도 하지.

너무 맑은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된다고 했던가.

어떤 날이 당신에게 오든,
용기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밤이다

류미나의 <우리, 행복해질 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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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올리는 글들이 늦어지고 약속했던 글이 안올라오니 한 분이 메일을 보내주셨습니다.

“아프신건가요?…
걱정되고 궁금하고..
요새 너무바쁘고 힘드신거 같아서 안부차 메일보냅니다..
힘내세요~~♡♡”

약간 울컥했습니다.

프리렌서의 일이라는 게
어느날 일이 몰려들면
정신 없이 몰려듭니다.

다음 주 강의가 없어져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6일 연속 강의로 무슨 말을 하면서 ㅜㅜ
잘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목이 쉬어서…

그리고 쓸 글들이 확 늘어나서…
눈은 빨개지고
읽을 책은 쌓여있고…

이번 주는 일단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 밖에 업데이트도 못하고 ㅜㅜ

그래도,

걱정 메일이 와서 너무 마음이 좋았습니다.

어떤 날은 비를 맞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맑기도 하겠지만…

외로움은 훨씬 덜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버틸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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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가까운 친구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식탁을 차리셨다.

딸들이 도와주기도 했지만
메뉴는 꼭 엄마가 정하셨고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양과
메뉴 선택으로 꾸미셨다.

초대받은 젊은 문인들과
엄마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엄마가 꾸민 식탁을
오래도록 못 잊어했다.

그것은 엄마가 평생 식구들을 위해
차려주었던 일상의 숱한 식탁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당가에 올라오는
머윗잎을 따다가 데쳐서
된장에 싸먹으며 엄마 생각을 하게 된다.

씁쓸하면서도 개운하고
흙내음에 가까운 향취에
흙으로 돌아가신 분의 생각에 잠기게 된다.

지천으로 올라오는 부춧잎을 캐어
오이소박이를 담가놓으며 부추 뿌리에서
나는 신선한 흙냄새에 생기를 되찾는다.

호원숙의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 : 엄마 박완서를 쓰고 사랑하고 그리워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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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원숙은 소설가 박완서의 딸입니다. 모든 딸들이 돌아가신 엄마를 이야기할 때 가지는 감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남자인 저는 아마 이해못할 것입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 왔습니다.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다시 그 딸도 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이런 반복이 오랜 세월 몸에 익힌 후천적인 DNA를 딸에게 줍니다. 그래, 어느 부분이 아프고 어느 부분이 애달픈지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서로를 추억하고 기억하는 부분도 이런 살림살이안에 있는가 봅니다.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여류 소설가의 딸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본 박완서의 모습과 아침밥을 챙겨주고 입시 때문에 마음 졸이고 연애와 결혼까지…

그렇게 여느 엄마의 삶처럼 동동거렸던 모습과 함께요. 호원숙은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노망이 든 할머니와 늘 해왔던 아버지 수발과 해마다 돌아오는 아이들의 입시로부터 어머니는 놓여날 수가 없었다. 그 가족사를 회피하지 않으면서 결국에는 다 문학으로 풀어내셨다. 그 어떤 것도 외면하지 않고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딸은 딸에게, 엄마는 엄마에게, 말은 하지 않지만 언제든 서로를 존경합니다.

소설가의 가족이 갖는 특별함보다 어느 집 문을 열고 들어가든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모녀’의 이야기를 엄마를 보낸 딸의 마음으로 담담히 풀어낸 책입니다.

박완서 작품에 항상 살아있었던 ‘절제미’가 딸의 글에서도 느껴집니다.

자주하는 부탁이지만… 지겹지는 않습니다.

꼭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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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여기 강원도 횡성의 한마을로 시집 온 한 여자가 있다.
14세에 시집와 74년을 해로 하면서 지금도 손을 꼭 잡고 다닐 만큼 유명 닭살 커플이다.
그녀가 바로 강계열 할머니다.
그녀는 조병만 할아버지를 짝으로 74년을 함께 살아오고 있다.
인근 마을에서는 늘 함께 다니는 금실 좋기로 유명한 짝이다.

할아버지:
“좋아라 해. 아직도 젋었을때 처럼 귀엽고 내 마음에 예뻤었는데 지금도 그 마음이야.”

93세 된 남자가 88세 된 여자를 지금도 예쁘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그 말은 한 치의 거짓도 과장도 없어 보였다. 그 남자도 그 여자도 행복해 보였다.
짝이란 것이 주는 희열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짝 중에서

[이책은] 인생의 반려자를 찾아 떠나는 한국인 특유의 긴 여정을 살펴보려한다.
한국인만의 짝 찾기에서 짝짓기, 그리고 공존과 이별의 순환과정까지
한국인은 과연 짝에 대해 어떤 특성과 기질들을 보여주고 있을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인 ‘짝’을 만나 살아가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한국인의 인생관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SBS 짝 PD가 전하는 우리시대의 ‘짝’ 이야기
<짝> 읽어보기 http://me2.do/5kuElJ0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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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6일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된 기분.
아웃렛 매장에 걸린 재킷이 된 기분.
다시는 펴보지 않을 지난 학기 전공 서적이 된 기분.
유통기한 지난 요구르트가 된 기분.
갑자기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기분이 들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당신을 크리스마스트리 위의 노란 별처럼
쇼윈도에 걸린 S/S 신상 원피스처럼
필사하고 싶은 베스트셀러처럼
매일 아침 배달되는 신선한 녹즙처럼 대해주는 사람에게
구조 요청을 하면 된다.
그들은 아마 당신의 애인이거나 엄마이거나 절친한 친구일 것이다.

낯선 세상으로부터 밀려났을 때
당신을 잡아줄 수 있는 존재는
언제나 가장 낯익은 사람들이다.

-달팽이 안에 달 중에서

56_문학의 숲을 거닐다

하늘에 무지개 보면
내 가슴은 뛰노라

내 인생 시작되었을 때 그랬고
지금 어른이 돼서도 그러하며
늙어서도 그러하기를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내 살아가는 나날이
자연에 대한 경외로 이어질 수 있다면
장영희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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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올해 인사가 하나 더 남았네요.
메리 크리스마스는 지나가고
happy new year! 가 남았군요.

저도 인사 하나 하려구요.

‘올해 경외하는 당신들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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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원문]

The road not taken.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53_익숙해지지마라 행복이 멀어진다

누구나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저에게도 막연하게나마
작가가 되면 어떨까 하는 꿈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막연하고 희미한 꿈이었습니다.
글 쓰는 걸 좋아했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강한 의지는 없었습니다.

그마나 그런 꿈이라도 꿀 수 있었던 건
결혼 전의 일입니다.
결혼 후에는 막연했던 작가의 꿈마저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생기니 내가 처한 현실 앞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벽면에 곰팡이 천지인
대여섯 평 되는 반지하 방에서 산다는 게,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이 눅눅하고 어두운 반지하 방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매일 매일 열심히 일했습니다.

물론 광고 카피라이터로 산다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반복적인 야근은 물론이고
거미가 거미줄을 끊임없이 뽑아내듯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야 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개씩 카피를 써야 하니
정말로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자부심이
저를 버티게 했습니다.

저는 점점 생활인이 되어갔고
그러는 사이 꿈은 점점 먼 옛날의 불꽃놀이처럼
아련해져 갔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아내의 건강 문제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을 땐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한참 돈을 벌 나이인데,
한참 달려야 할 나이인데….
그 자리에서 멈춰야만 했습니다.
돈벌이는 없고 아내는 점점 더 고통스러워하고
아이는 울고.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 앞에서
점점 무기력해져만 갔습니다.
‘아, 끝이구나.’
그 생각이 불현듯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희한하게도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꿈이었습니다.

작가가 되고자 했던 꿈.
그 꿈은 예상치 못한 시기에
그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고난과 역경의 시간이었지만
오히려 그 시기가 저를 작가로 인도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입니다.

아내랑 아이를 곁에서 돌보며
밥벌이도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글쓰기라 생각을 한 것입니다.

몇 년 후, 열정을 다 바친 끝에
막연했던 꿈이 구체적인 현실로 실현되었습니다.

마침내 제 이름으로 책이 나온 것입니다.
그 성취감은 참으로 말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물론 생활은 직장을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쪼들렸지만
그래도 꿈을 이뤘다는 게 마음을 늘 풍요롭게 했습니다.

이처럼 삶의 전환점은
고난과 역경의 끝자락에서부터 오는 것 같습니다.

끝이라 생각했을 때 아이러니하게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김이율, <익숙해지지 마라, 행복이 멀어진다 : 어른이 되면서 놓치고 있는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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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공감한줄사전’인데
왜 이렇게 기냐구요?

이 글을 중간에 잘라내는 것은
일종의 ‘범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2_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눈길을 걸으면서도
뒤에 남는 발자국까지
걱정하지 말라.

사실 그냥 당신 갈 길만
유유히 바르게 가기만 하면
될 일이다.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판단은
뒷사람의 몫이다.

설사 앞사람의 발자국을
똑같이 그대로
따라 간다고 할지라도
그건 같은 길이 아니라
뒷사람이 새로 가는 길일뿐이다.

원철 스님의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서라도 멀지 않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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