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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모든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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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태어났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한 여인의 몸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은 채.

아기는 열심히 어미의 빈젖을 빨았다.
여인은 꼭꼭 밥을 씹어 아이에게 먹이며
사랑과 정성으로 아기를 품어 살려냈다.

어릴 적 홍역 침을 잘못 맞아
벙어리가 된 여인은 기구하고 불쌍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가난과 모진 병에 시달리다
어린 피붙이 하나만 세상에 덜렁 남겨두고
차마 감을 수 없는 눈을 감았다.

여인의 아기는
의젓함이 슬프게 느껴질 정도로
철이 든 소년으로 자라났다.

소년의 아버지는
가난을 비통해하며
술로 힘든 세상을 잊고 지내다
제주 4.3사건 때 영문도 모른 채
산으로 끌려가 애처로운 죽음을 맞았다.

소년의 나이 7살.
독한 외로움을 혼자 견뎌내기엔 너무 어렸다.

친척 집에 얹혀살던 소년은
작은 몸뚱이로는 버티기 힘든 밭일과
시도 때도 없는 모진 매타작에
결국, 한밤중 야반도주를 하고 말았다.

몇 날 며칠을 산속에서 헤매다
‘하효’라는 마을에 찾아들어
마을 유지인 딸부잣집 김씨 어른네 머슴이 되었다.

머슴으로 온갖 잡일을 하던 소년은
머슴살이의 서러움을 견디고 버티며
의젓한 청년으로 자라난다.

천성이 어질고 착실했던 청년은
주인의 신뢰를 얻었고,
결국 딸부잣집 막내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느껴보지 못했던 청년은 처가 식구를
극진히 봉양하고 정성을 다해 모셨고
구두쇠에 대쪽같은 성격으로
모질게 대했던 장인어른의 노년마저도 책임을 졌다.

장인어른의 대소변도 마다치 않았던 그는
장인어른의 마지막 유언을 듣게 된다.

“고맙네. 고맙네, 사위…”

청년은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아이들이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행여 남들에게 서러움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아내와 가난과 고됨을 견뎌냈다.

다섯 아이는 곧고 바르게 자랐고,
그 또한 자상한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다.

이제 그는 힘들었던 지난 시간과
서러움을 오롯이 홀로 견뎌온 세월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움을 가진 사람으로 변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그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매일 새벽마다 바다를 향해 기도하는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항시 떠나지 않은
한 분을 위한 그리움과 감사함을 담은 기도,
부모님을 향한 기도였다.

못다 한 효도를 홀로 사는 노인들을
두루두루 살핌으로 대신했던 그가
이제는 칠십 중반의
인자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어릴 때 내 억울함을 들어줄
형제지간 한 명만 있었어도…”

지난날을 회상할 때 할아버지가 된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한다.
외로움과 서러움이 뼈에 사무쳤던 지난날들을
어떻게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
.
.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자란
다섯 형제는 뿌리를 내려
많은 자손을 안겨드렸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드렸다.

이제 칠십 중반의 인자한 노인이 된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중얼거림 속에서 나는 들었다.

돌아가신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애타게 그리워했던 어린 시절의 아픔을.

아버지는 지금도 ‘어머님의 영혼’을 느끼며
오늘을 감사하게 살아간다고 하신다.

나도 참 감사하다.
지금까지 내 곁에 계셔서,
힘든 인생길을 잘 견뎌주셔서.

“존경합니다, 아버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영희 님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를 내 사연을 보내주신 분들께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삼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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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의 한줄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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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늘도 밥을 태웠다.
꼭 잊어버릴 만하면 밥에서 탄내가 진동한다.

“냄새나서 먹기 싫어.”

엄마는 기운 빠진 웃음으로
미안하단 말을 대신하며
타지 않은 쪽 밥을 내 밥그릇에 퍼 주셨다.

하지만 냄비 안에서 퍼진 탄내는
이미 집안 곳곳에 가득.

“안 먹어. 냄새난단 말이야!”

아침부터 온갖 투정을 부리며
엄마의 밥상을 외면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는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엄마의 탄 밥은 금세 다 잊어버렸다.

툭툭 아픈 말만 내뱉고 걸음을 재촉하는 나를
멀찌감치 바라보며 눈을 떼지 못하셨을 엄마의 시선…
왜 그때는 몰랐을까.

학교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 뚜껑을 열자마자 탄 밥 냄새가 퍼졌다.
친구들이 수군거리고 괜스레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엄마는 매일 하는 밥을 도대체 왜 태우는 거야…’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엄마의 탄 밥에 대한 나의 못되고 뾰족한 투정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밥투정했던 나는 지금
8개월이 된 딸을 키우고 있다.

신생아 때부터 잠투정이 심했던 딸은
백일 즈음엔 정말 나를 시험에 들게 하듯
신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게 했다.

“엄마, 힘들어 죽겠어. 아기가 잠투정이 너무 심해.
계속 울기만 해. 안아 줘도 울고,
업어줘도 울고 젖을 줘도 울어.
잠도 안 자니까 정말 내가 너무 힘들어…”

아기 키우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았느냐고
오히려 나를 타박하던 엄마도
예민한 손녀의 잠투정에 두 손을 드셨다.

나는 점점 체중이 줄었다.
엄마는 나를 위해 반찬을 만들어 갖다 주셨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길
하루, 일주일… 한 달, 두 달…

거짓말처럼 어느 순간부터
딸아이의 잠투정이 줄고 예쁜 짓은 늘어갔다.
그제야 딸 때문에, 손녀 때문에
힘드셨을 친정엄마에게 눈길이 갔다.

“엄마, 엄마가 해온 불고기 먹고 가.
내가 차려줄게. 같이 먹어야 더 맛있지.”

얼른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따끈하게 돌리고,
엄마표 돼지 불고기를 볶아 야무지게 상을 차렸다.
그런데 밥이 입안에서 겉돌았다.

시간이 좀 걸려도 새 밥을 해드릴걸,
후회가 밀려오면서
미안한 마음에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는 밥에 현미가 들어가서 그런지
씹히는 맛이 있다며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 옛날 ‘탄 밥’ 이야기를 하셨다.

“네 외할머니는 내가 전기밥솥을 두고
새벽에 일어나 너희에게 냄비 밥해주는 걸
참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어.
밤 장사 하고 쪽잠도 챙겨 자면서
뭘 그렇게까지 바치느냐고.
그래도 엄마는 갓 지은 냄비에 고슬고슬~
밥해서 너랑 네 오빠 도시락 싸주는 게
그렇게 기분 좋고 뿌듯하더라.

그렇게 고슬고슬 냄비 밥 해먹이고
학교에 가는 너희 모습을 보면
온종일 내 마음이 좋았어.
아침에 가끔 깜빡 졸다가 태울 때도 있었지만…”

맞다. 엄마는 혼자서 우리 남매를 키우기 위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여인숙을 하셨다.
밤에 하는 장사이기에 잠도 못 자며 일하시며
험한 손님도 상대하시곤 했다.

낮엔 다시 방 정리에, 청소에, 손빨래까지.
하루도 쉴 수 없는 일이 반복되는 고된 일이었다.

매월 월세를 내고 부족함 없이 우리를 키우기 위해
낮에 찾아오는 손님도 마다치 않았던 엄마.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일을 하셨지만,
본인 잠도 미루고 따끈한 냄비 밥만 고집하셨다.

“맞아. 나도 기억나네. 엄마가 밥 태우면
내가 막 짜증 내고 그랬잖아.”

“네 오빠는 별말 없이 먹는데
넌 냄새에 민감해서 그랬지. 물도 가려 마셨잖아.
꼭 보리차나 옥수수 차만 마시고
결명자차는 안 먹어서 물도 따로따로 끓였었지.”

엄마가 간만에 딸이 차려준 저녁을
맛있게 드시고 가셨다. 상을 치우고
칭얼거리는 딸아이를 재우는데 뭔가 울컥, 했다.

딸의 철없는 행동과 말들에
우리 엄마는 얼마나 상처받고 힘드셨을까.
애써 하신 냄비 밥이 타버려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밥을 안 먹고 나간 딸내미 때문에
온종일 고된 일 사이사이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순간순간 그때의 엄마의 감정이 이입되어
가슴 한 곳이 울컥하더니, 찡… 울렸다.

엄마에겐 아직도 받는 게 익숙한 철부지 딸.
그래도 난 조금만 더, 응석 부리고 싶다.

아직 ‘딸 가진 엄마’
‘우리 엄마 딸’인 내가 더 좋으니까.

난 앞으로도 오래오래~
‘우리 엄마 딸’로 지내고 싶다.
난 엄마의 영원한 철부지 딸이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철든 딸이 될 거다!

“엄마,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 주세요.
제가 오래오래 따끈한 밥 해드릴게요!”

심희진 님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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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맘 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사연입니다.

2년 전 어느 날,
칼퇴근하던 남편이
전화 한 통도 없이 술 냄새를 풍기며
아침 6시에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들어온 남편은
아내의 걱정 한가득 뒤로 한 채,
바로 욕실로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

내 두 눈에서는 레이저가 발사되었고
내 마음은 떨리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난 아내랍시고
평소와 다름없이 습관처럼 했던 그 행동…
남편이 벗어놓은 양복 윗도리를
털어 옷걸이에 걸고 말았다.

아차! 싶었을 때
남편의 옷에서 작은 종이가 떨어졌다.

은행 출금 확인서.
금액 200만 원.

아까보다 더 심장이 두근거리고
두 눈은 튀어나올 지경이 되었다.

도대체 이 큰돈을 왜 뺀 거지?
설마, 하룻밤 술값은 아니겠지?
아니, 술값이 아니라… 설마!

남편이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나는 아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
매우 예리하면서도 매우 감정적으로
우리 남편을 맹렬히 심문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앙칼진 나의 심문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앉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말없이
쓰윽, 핸드폰을 내밀었다.

당시 남편의 직업은 자동차 지점장이었다.
처음엔 호기롭게 영업을 시작했지만
불경기에 생각보다 일은 잘 풀리지 않았고
매월 말일만 되면 얼굴은 반쪽이 되었다.

‘그 일’이 있던 그 날도
힘든 말일이 막 지난 7월의 첫날이었다.

남편의 핸드폰 속
‘받은 메시지함’을 보자마자
난 한순간에 ‘얼음!’이 되었다.

받은 메시지함 속 47개의 메시지는
동료와의 실적 비교에 대한 코멘트부터
인신공격적인 내용, 참기 힘든 욕설,
기분 나쁜 비아냥까지
삶에 대한 회의가 들 정도의
다양한 메시지로 가득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메시지 내용은 마감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그 수위와 강도가 점점 강해졌다.

어제,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후배 영업사원 한 명이
남편을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차를 뽑아
남편의 실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남편은 이런 후배 사원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에
새 차 출고 비용 200만 원을 빌려주었단다.

고맙다고 한 잔,
신세를 한탄하며 한 잔,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자 또 한 잔…
그렇게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졌다는 남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 눈에서도 눈물이 따라 흘렀다.
우리는 아이가 깰까 봐
한참을 함께 흐느껴 울었다.

.
.
.

얼마 후, 우리는 큰 결심을 했다.
남편과 11살 된 딸이
뉴질랜드로 가기로 한 것이다.

남편에게 그곳에서
당분간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유시간을 가져보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내 맘 변하기 전에 얼른 가.
마누라 직장 있고, 수입 있을 때!”

남편은 많이 주저했다.
그리고 미안해하며 떠났다.

그렇게…
나는 ‘기러기 엄마’가 되었다.

남편과 딸이 떠난 지 2년.
다행스럽게도 처음에 걱정하고 염려했던
많은 일이 하나씩 잘 해결되었다.

성실한 우리 남편은
뉴질랜드에 정착한 지 3개월 만에
제법 내실 있는 무역업체에 취직했다.

12살이 된 딸도
언어장벽을 잘 넘었고,
수학경시, 배드민턴 등 각종 경기에
나가며 학교생활을 즐기고 있다.

혼자 남은 나는
틈틈이 딸과 영상통화 하느라
칼퇴근하기 바쁘고
한 달에 한 번꼴로 딸 학용품을
소포로 보내며 사랑을 함께 전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발을 내딛기 힘든 내일.

우리 가족도 그랬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불안한 내일을 향해
함께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성실히 힘을 모아 걷다 보면
생각지 못한 길이 분명 나타난다는 사실을.

이제 시작이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차근차근
이민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먼 훗날,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마음이 어떨까.

남편과 함께
이렇게 회상하고 싶다.

“와… 그때는 정말 막막했었는데
정말 이런 날이 오긴 오네.
지금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나중에, 또 나중에도
우리 또 함께 ‘오늘’을 기억하자.”

 

써니맘 님, 가족과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기를 내 사연을 보내주신 분들께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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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아 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사연입니다.

중국에서 홀로 유학한 지 11년째.
너무나 어려서부터 유학을 했기에
엄마에 대한 정과 그리움이 뚝뚝…
흐르는 것 같다.

이제 내 나이 열여덟 살.
내 또래 친구들이
엄마한테 작은 일로 짜증 내는 걸 보면
이상하게 나는 화가 난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너 엄마한테 그러면 안 돼…’

저 애는 모르겠지. 엄마한테 짜증 내는 게
얼마나 큰 사치이고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한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는 건지.

나의 소원은
엄마의 따뜻한 밥을 먹고 학교 가는 것.
나의 꿈은
엄마 옆구리에 꼭 붙어 품 가득 엄마를 안고 잠드는 것.

내 인생의 목표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보다
‘엄마랑 함께 사는 것’

시간이 흐르고 흘러,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키와 몸은 더 커졌지만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은 그 두 배, 세 배로 커졌다.

특히, 요즘은 대학 때문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전화로
“여보세요”하는 엄마의 목소리만 들리면
나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뚝.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네 맘 다 알아. 다 아니까 힘내.”

엄마가 나를 토닥여주는 말을 하면 할 수록
나의 숨죽은 흐느낌과 훌쩍거림은 더해지고 만다.

애써 웃으며 건네는 마지막 인사.
이제 곧 성인이 될 나이인데
엄마 앞에서 나는 언제나 아기다.

한국에 갔을 때
엄마 옆에 누워 생각했었다.
‘시간이 이대로 멈춰 버렸으면…’

날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을 엄마.
엄마를 위해 내일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고마워, 미안해”라는 말보다
내가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보고 싶어. 엄마가 보고 싶어”이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우리 엄마.

그리운 마음 한가득 담아,
이 글을 써본다.

“사랑해, 엄마.
보고 싶어, 우리 엄마!”

이세아 님, 엄마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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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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