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난 내가 좋아!

그래도 난 내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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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떤 가면을 쓰셨나요.
친절한 엄마 가면?
조금 화난 엄마 가면?
친구같은 엄마 가면?
그냥 그런 엄마 가면?

성격이란 말의 어원이 바로,
페르소나(가면)라고 합니다.
연구소를 운영하며 강의, 상담 등을 통해
참 많은 ‘엄마’들을만나게 되는데요,
엄마들마다 정말 성격도 다양하고
그에 따라 개성있는 ‘엄마가면’을 쓴 채
육아를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때론 ‘엄마가면’ 그 자체 때문에
힘들어서 제 연구소를 찾기도 하시지요.
가끔은 엄마가면을 벗기가 두렵다고도,
혹은 엄마가면을 쓰기가 싫다고도
고백 아닌 고백을 털어놓으시곤 합니다.

혹시,
육아서를 보고, TV속 이상적인 엄마상을 보고,
괜찮은 동네 엄마의 육아팁을 듣고…
다른 엄마들의 가면을 따라 써 보신 적 있나요.
저는 있습니다.
하지만 몇 일, 몇 시간 가지 않아
이내 ‘나 특유의 엄마가면’으로 돌아오더군요.

엄마가면,
어떤 가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많이 쓰는 종류의 가면은 어떤 건가요.
아니면, 가장 버리고 싶은 가면은요?

저는 따뜻하고 씩씩한 엄마가면을 쓰고 싶고,
가장 많이 쓰는 엄마가면은
‘잠깐만 기다려’하는 목소리가면이고,
가장 버리고 싶은 가면은,
‘욱’하는 엄마가면입니다.

그 어떤 가면을 써도 ‘우.리.엄.마’라서
좋아해주고 기다려주는 우리 아이들.
저는 오늘 아들들이 가장 좋아하는
<파워레인저> 엄마가면을 힘차게 써봐야겠습니다.

“자, 덤벼랏! 파워레인줘~ 다이노뽀뜨!”


난 공부를 못한다.
올빼미 마스크처럼 계산을 빨리 하지도 못한다.
글씨도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처럼 쓰니까,
글씨 쓰기가 싫다.체육도 마찬가지다.
요즘 반에서 유행하는 씨름도
터무니없이 못한다.음악은 딱 질색이다.
리코더도 잘 못 불고,
노래할 때도 음정이 어긋나기 일쑤다.
그래, 나는 뒤처진 아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운동장 구석.
여기는 내 비밀 장소다.


우선 귀여운 꽃들에게 물을 줬다.
작아서 눈에 띄진 않지만 무척 예쁜 꽃이다.

내가 없어져서 지금쯤 다들 좋아하고 있을까?
내가 없어진 줄도 모르겠지..
내가 내가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저쪽에 무언가가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온갖 마스크가 흩어져 있었다.
올빼미 마스크, 장수풍뎅이 마스크,
해달 마스크, 토끼 마스크…

큰맘 먹고 올빼미 마스크를 써 보았다.
정말 대단한 마스크였다.
지금까지 풀리지 않던 문제가 술술 풀렸다.

다른 마스크도 써 보자!


다음은 장수풍뎅이 마스크.
아주 커다랗고 무거운 통나무도 번쩍!
다음은 개구리 마스크.
노래하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다.

이거나 저거나 굉장한 마스크였다.
내 머릿속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나는 머리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만들기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나는 도대체 뭐가 되고 싶은 걸까?

“치킨 마스크야, 다른 마스크가 되지 마.”
“네가 없어지면 누가 우리한테 물을 주겠어?”


어디선가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중한 나무 동산 식구들이
모두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나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아! 온통 마스크네!

자세히 보니까
진짜 우리 반 애들이 다 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였다.

“치킨 마스크야, 교실로 돌아가자.”

파랗게 갠 하늘이 멋진 날이었다.
내 그릇에 무언가 들어찬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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