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섹시 글쟁이 ‘허지웅’ 의 팬들에게]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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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리티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환상을 강권하는 미디어와 세계’에 대하여
세상을 운영하는 자들은
이 꿈을 마약처럼 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출신에 허락된
꼭 그만큼의 현실을 살아나가야만 합니다.

물론
전과 마찬가지로
너희들도 언제든지
셀러브리티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는
환상이 존재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

이 마약과도 같은 낙관은,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찰나의 경우로 존재하는
일말의 어떤 아름다움들은

이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추악함에 대해
솔직히 말하는 사람들은
아쉽게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는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겁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거짓 낙관 없이도 세상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허지웅의 첫 소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의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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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나온 시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100년 중의 반을 전쟁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낮만큼이나 어둠을 노래했기때문입니다.
조금 덜 칙칙한 시인들은 회색을 노래합니다.

꼭 전쟁이 없더라도 인간은 이 두가지를 다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꿈과 희망, 긍정, 밝음이라는 단어들만이
인간에게 주어진 다음,

사람들은 언제든 자신의 어둠을 덮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 쪽 모습으로 거리를 걷습니다.
옆을 가리든, 위를 가리든 가린 모습으로 걸어다닙니다.

‘셀러브리티’는 유명인 정도로 이해되지만
원래의 뜻은 태어날 때부터 잘난 사람들입니다.

태어나면서 밝음과 어둠을 같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밝은 부분만을 보였을 때 우리는 부러워합니다.

이것이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두번째 탄생입니다.

어둠을 떨기고 밝음만을 남깁니다.

그렇지만 진실은 밝히기 싫어하는 쪽에도 있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을 사랑하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은 상처를 담고 살게 됩니다.

어둠을 드러낼 때,
어둠을 인정할 때…

그 때가 되어서야 진정,
스스로를 사랑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