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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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를 주는 직장에서 벗어나 일을 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거나 조롱거리가 된다.

인간의 자율적 행위는
고용수준을 위협하고,
사회적 일탈을 일으키며,
국민총생산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그런 행위는
부적절하게 불리는 ‘노동’일 뿐이다.

노동은 더 이상
인간의 수고나 노력이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적 투자와
어울리지 않게 결합된 기괴한 요소를 의미한다.

노동은 더 이상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가치의 창조가 아니라,
주로 사회적 관계인 직업을 의미한다.

무직은 자신과 이웃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자유라기보다는
슬픈 게으름이 되었다.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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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렌서가 되어도
돈을 주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일해야 합니다.

사람은 여러 종류의 일과 노동을 하지만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있고
돈을 받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돈을 써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굶어죽는 상황이 됩니다.

즉 생존이 돈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돈으로 살아야 한다면
돈을 가져오는 ‘노동’만을 해야 합니다.

회사원이든,
프리렌서든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돈을 주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주는 돈 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돈을 줍니다.

이것을 ‘자본주의’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 돈을 주어 일을 시켰는데
돈을 더 못벌어오게 되면?

우리는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더 많이 벌어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돈을 더 받습니다.

돈을 주고 일을 시켜 돈을 더 벌 수 있다면
우리가 돈을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회적인 가치’나
‘예술적인 가치’가 있는 일들
혹은 하고 싶은 일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오직 ‘돈’만이 목적이라면
‘돈을 주는 사람’
즉 사용자가 되어야겠지요.

하지만 리스크도 많고
시장 환경은 만만치 않습니다.

이렇다보니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무직은 범죄가 되고
실업자는 살인죄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삽니다.

이런 사면초가를 우리는 ‘자본주의’라고 부릅니다.